알베르토 부리, '자루'. 이 작품은 앵포르멜 계열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낡고 거친 삼베 조각, 좀이 슬었거나 찢어진 천, 다락방에 버려진 자루 조각 등의 재료를 되는대로 오려 붙이고는 그것에 ‘자루’라는 제목을 붙였다.
20세기 예술가들은 재료의 가치와 풍요로움을 발견했다. 물론 ㉠이전의 예술가들이 재료로부터 창조적 구성이 나오고, 재료가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재료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고 그 속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료 그 자체는 아직 미적 질서를 부여받지 않은 상태이며, 미(美)란 재료 위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세기 예술가들은 이런 확신에 반발하면서 재료를 재평가했다. 그들은 기존의 조형 예술의 틀을 포기하고, 아직 발견되지 않고 손상되지 않은 신선함을 지닌 재료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작품의 밑바탕으로만 여겨졌던 재료는 그 자체가 예술의 목적이자 예술적 창조의 대상이 되었다.
‘앵포르멜(informel)’이라고 불리는 회화에서 우리는 얼룩, 균열, 덩어리, 박편, 물방울 같은 재료들의 승리를 볼 수 있다. 앵포르멜 화가들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의 동요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재료 그 자체, 즉 캔버스 위에 흩뿌린 물감이나 찢어진 자루, 균열이 생긴 금속에 모든 일을 맡긴다. 그들은 그림이나 조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또는 우연의 산물로 만들기 위해 일체의 형식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가는 그저 원재료를 상기시키는 제목을 자신의 작품에 붙일 따름이다. 몇몇 앵포르멜 화가들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갈, 얼룩, 곰팡이, 녹 등의 재료를 선택하고 강조했으며, 의식적이고 인위적인 표현 행위를 최소화하면서 재료의 비정형성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각인하려 했던 것이다.
이미 20세기 초에 뒤샹 같은 예술가들이 제안했던 레디메이드 미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술가는 스스로 존재하는 사물이,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를 표현하는 예술 작품이라도 되는 양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식으로 예술가들은 자전거 바퀴, 열에 의해 변형된 컵, 마네킹, 그리고 심지어 변기까지 조각 작품으로 선택했다. 일상의 사물들이 별다른 변형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예술가에 의해 선택되고 제목이 붙여져서 작품이 되는 순간, 이 사물들은 마치 작가의 손에 의해 창조된 것처럼 미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미 소비 주기가 끝나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던 상품이나 산업 폐기물이 재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재료들을 통해 예술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산업화된 세계에 대한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동시에 우리에게 산업화된 세계의 사물들 역시 미적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소비 주기가 끝나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려진 이 재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쓸모없음이라는 속성으로 인해 미적 가치가 있는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낡은 자동차의 라디에이터를 압착하고 변형시켜 일그러진 금속의 형태를 제시한 세자르의 작품이 이에 해당한다.
― 미셸 푸코, 「추상적 형식에서부터 재료의 심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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