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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상화보다는 초상 사진이 더 사실적이라고 느낀다. 회화에 비해 사진이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진이 기계적 장치에 의해 대상을 정확히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점이나 노출을 조절하여 대상을 변형시킨 사진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사진이 사실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사진 미학 이론에서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이런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기의 주요 장치인 초점 조절 장치, 조리개, 셔터 등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초점 조절 장치는 렌즈와 필름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여 피사체의 상을 필름 면에 맺게 한다. 이 장치에는 렌즈와 관련한 광학 원리가 적용된다. 사진기 렌즈는 중심보다 가장자리가 더 많이 굽은 볼록 렌즈인데, 렌즈 면이 굽을수록 더 많이 굴절되므로 광축*에 평행으로 입사한 빛들은 광축의 한 점에 모인다. 렌즈의 중심부터 빛이 모이는 점까지의 거리를 초점 거리(𝙛)라고 한다. 렌즈의 초점 거리는 렌즈를 제작할 때 결정되므로 렌즈마다 고유한 초점 거리를 갖는다. 하지만 렌즈의 중심과 피사체 사이의 거리인 물체 거리(𝙤)가 달라지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렌즈의 중심과 상이 맺히는 지점 사이의 거리인 상 거리(𝙞)가 달라진다.

 

물체 거리(𝙤)와 상 거리(𝙞)가 렌즈의 초점 거리(𝙛)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1/𝙤 + 1/𝙞 = 1/𝙛 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를 렌즈 공식이라 한다. 렌즈 공식을 활용하면 𝙞 를 구할 수 있다. 아래 <그림>처럼 𝙛가 20cm인 렌즈가 있다고 하자. 피사체인 연필의 𝙤 가 40cm인 경우에 연필의 𝙞 는 40cm가 된다. 𝙤가 10,000cm인 나무의 𝙞 는 어떻게 될까? 𝙤가 𝙛보다 100배 이상 크면 물체가 무한대의 거리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따라서 1/𝙤이 매우 작아서 무시할 수 있으므로 나무의 𝙞는 𝙛 와 거의 같다. 만약 𝙤가 𝙛보다 작으면 피사체의 빛이 퍼져서 모이지 않아 렌즈 뒤에는 상이 맺히지 않는다. 렌즈 공식을 활용하면 상의 크기도 파악할 수 있다. 상의 크기를 피사체의 크기로 나눈 값은 𝙞를 𝙤로 나눈 값과 같다. 그러므로 이 값과 피사체의 크기를 알면 상의 크기도 알 수 있다.

 

<그림>

 

조리개와 셔터는 노출을 결정한다. 노출은 필름에 입사되는 빛의 양이다. 노출이 과하면 사진이 허옇게 번져 나오고, 노출이 부족하면 사진이 어둡게 된다. 조리개 값과 셔터 속도로 노출 정도를 결정할 수 있다. 조리개는 렌즈 바로 뒤에 있는 구멍으로, 그 면적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조리개 조절 장치에 기록되어 있는 1.4, 2, 2.8, 4, 5.6, 8, 11 등의 수치들은 렌즈의 초점 거리(𝙛)를 조리개의 지름으로 나눈 값인데, 이를 조리개 값이라 한다. 조리개 값을 작은 수로 바꿀 때마다 조리개 지름은 약 1.4배 커져 조리개 면적이 약 2배 넓어진다. 따라서 빛의 양도 약 2배 증가한다. 한편 셔터는 촬영 순간 열렸다 닫혀서 빛의 양을 조절한다. 셔터 속도는 1, 2, 4, ... 등으로 표시된다. 이는 셔터가 열려 있는 시간이 1/1초, 1/2초, 1/4초, ... 등임을 뜻한다. 셔터 속도가 2배 빨라지면 노출 시간 역시 2배 짧아지므로 빛의 양이 2배 감소한다. 따라서 사진가는 조리개와 셔터를 활용하여 의도적으로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

 

조리개와 셔터에는 다른 기능도 있다. 조리개는 사진의 심도에 영향을 미친다. 심도란 상이 필름에서 적절하게 초점이 맞는 물체 거리의 범위라고 할 수 있다. 조리개 지름이 작아지면 광축에 가까운 빛만 입사되어 초점이 맞는 물체 거리의 범위가 넓은데, 이를 심도가 깊다고 표현한다. 반대로 조리개 지름이 커지면 초점이 맞는 물체 거리의 범위는 좁다. 따라서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심도는 중요한 요소이다. 셔터 속도는 피사체의 움직임을 어떻게 구현할지 결정하는 기능을 한다. 빠른 셔터 속도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정지 동작으로 나타낼 수 있다. 노출 시간이 짧아 피사체의 잔상이 필름 위에 남을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느린 셔터 속도를 사용하면 움직임을 암시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움직이는 피사체는 흘러가듯이 표현된다.

 

이와 같은 사진기 장치들의 특성은 대상을 사진으로 정확하게 재현할 수도, 의도적으로 변형할 수도 있게 한다. 대상을 변형시킨 사진 역시 사실성을 갖고 있다고 볼 것인지에 대해 바쟁은 사진은 기계 장치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사실성을 띤다고 본다. 조리개와 셔터 등의 요소에서 인간의 주관이 개입되는 측면을 인정하더라도 기계적 방식으로 대상을 기록한다 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든은 사진은 우리가 육안으로 직접 보았을 법한 대로 대상을 묘사한다고 보고, 그런 의미에서만 사진이 사실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진이 기계에 의존하여 대상을 정확히 재현한다는 점을 중시한 것이다. 그래서 그림은 그 대상의 가시적 특징을 추가하거나 누락할 수 있지만 사진은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림과 달리 사진이 사실성을 띤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사진은 대상에서 나온 빛 이미지의 자취를 기계 장치로 기록한 것이다. 발자국이 대상의 실재를 함축하듯 사진은 그 대상의 실재를 함축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진은 사실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발자국은 사진과 동일한가? 이 견해에 의하면 사진은 대상 자체의 자취가 아니라 대상에서 나오는 빛 이미지의 자취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발자국과 구별된다. 또한 사진의 사실성은 사진이 대상을 정확히 재현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사진 형성 과정에 사진가가 적극 개입한 사진이건 우연히 찍힌 사진이건 빛 이미지의 자취라는 점에서는 모두 사실성을 띤다는 것이다.

 

*광축: 렌즈의 중심과 초점을 연결한 선.

 

 

― 김중복 외, 『과학 교사를 위한 빛과 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