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Marco Secchi on Unsplash

 

어느 관현악단의 연주회장에서 연주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휴대 전화의 벨 소리가 울려 음악의 잔잔한 흐름과 고요한 긴장이 깨져버렸다. 청중들은 객석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황급히 호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 전원을 끄는 이는 다름 아닌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주자였다. 연주는 계속되었지만 연주회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었고, 음악을 감상하던 많은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이와 같은 사고는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공공장소의 소음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소음 문제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의 생활 속에는 ‘개인적 도구’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한 도구들 덕분에 우리의 생활은 점점 편리해지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득은 개인과 그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 사이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그 관계를 넘어서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개인적 도구가 넘쳐남에 따라, 개인과 개인, 도구와 도구, 그리고 자신의 도구와 타인과의 관계 등이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다. 소음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편리와 효율을 제공하는 도구들이, 전체의 차원에서는 불편과 비효율을 빚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회에서 개인적 도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공공장소의 소음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소음을 규제하는 것만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소리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담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성세대의 추억 속에 담긴 다듬이 소리, 엿장수의 가위 소리, 뻥튀기 소리,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개인의 삶을 의미 있게 저장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소리에는 계절의 변화가 담겨 있고 지역의 삶과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즉 시공간적 다양성을 담아내는 문화의 구성 요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음을 규제하는 소극적인 조치를 넘어 소리를 통해 문화 공간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도시계획에서는 이것을 ‘사운드스케이프’라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사운드스케이프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공간 연출 기법을 말한다. 예를 들어 도심에 작은 분수와 물길을 만들어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를 통해서 지역 공동체의 특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담은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에서 ‘소리의 명소’, ‘지키고 싶은 소리의 풍경’ 등을 정해 지역 문화를 부각시키고, 주민들에게 소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며 나아가 관광 요소로도 활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개인적 도구가 공공의 공간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은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다. 궁극적으로 소리의 문화적 가치와 공공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 '도시는 미디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