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mund Lee Gettier (1927-2021)

 

 

서구 철학 전통에서는 앎, 즉 지식을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고 파악한다. 참인 믿음을 갖는 것만으로 지식을 가졌다고 말하기에 불충분한 이유는 우리가 어쩌다 참인 믿음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어떤 믿음이 참이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나 근거를 가질 때 비로소 그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전통적인 인식론에서는 명제 P가 실제로 참이며, 인식 주체 SP를 믿고 있고, SP라는 그의 믿음에 대해 정당한 이유나 근거를 가지고 있을 때, SP라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정당성, , 믿음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된다면 우리가 지식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전통적인 인식론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던 지식의 세 가지 요소가 지식의 필요충분조건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제기한 사람은 게티어👤. 다음의 예를 통해 그가 제기한 반론을 이해해 보자. 카페에서 한국 대 일본의 축구 시합을 방영하고 있다. 카페 안에 다수의 한국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여 안에서 들리는 환호성을 듣고 나는 한국이 방금 골을 넣었다고 믿게 되고, 실제로 한국이 골을 넣어 지금 1 0이다. 이때 한국이 방금 골을 넣었다는 내 믿음은 정당화되며 참이다. 그렇지만 내가 실제로 들은 환호성은 카페 위층 사무실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한국이 득점을 올린 바로 그 시점에 열린 승진 축하연에서 나온 소리였다. 따라서 나의 정당화되었던 참인 믿음은 지식이 되지 못한다. 결국 게티어가 제기한 반론은 지식이 아닌,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게티어 이후 인식론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당화 기준을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정당화 기준을 결정짓는 요인이 인식 주체에 내재하는가 아니면 외재적인 것인가라는 물음이 제기되었다.

 

내재주의의 기본 입장은 믿음의 정당화가 믿음들 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지구는 둥글다라고 믿을 때, 이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들에 대한 내 믿음과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에 관한 내 믿음이 바로 지구는 둥글다는 내 믿음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재주의는 믿음의 정당화를 결정하는 요인이 인식 주체의 다른 믿음들이라고 본다. 이때 인식 주체의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정당화 요인에 대해 그가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반면 외재주의의 기본 입장은 믿음의 정당화는 객관적 근거, 즉 그 믿음들이 신빙성 있는 인지 과정을 거친 객관적 근거에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책 앞에서 내 앞에 책이 있다라는 명제를 믿는다고 하자. 외재주의자들은 내 앞에 책이 있다는 것을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신빙성 있는 인지 과정으로 얻은 객관적 증거가 내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외재주의자는 믿음의 정당화가 사실과 믿음 간의 인과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기도 했다. 내재주의자와 외재주의자는 각각의 입장에서 지식 개념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인식론적 관점에 대해 여전히 논쟁 중이다.

 

 

― (출전) 하종호, ‘서구 철학의 인식론

@ 2021학년도 3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16~21번 (가).

(아래 지문과 함께 출제됨.)

 

동양 철학의 인식론(2021, 고3, 3월)^

동양에서는 인식론을 거론할 때, 흔히 주자👤의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거론한다. 격물의 기본 의미는 구체적 사물에 나아가 그 극한에까지 사물의 이치인 리(理)를 탐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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