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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는 인식론을 거론할 때, 흔히 주자👤의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거론한다. 격물의 기본 의미는 구체적 사물에 나아가 그 극한에까지 사물의 이치인 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치지란 나의 지식을 극한까지 연마하고 확장하여 앎의 내용에 미진한 바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주자는 사람의 마음은 앎이 있지 않음이 없어서 격물을 통하여 마음속에 본디 있던 앎을 밝혀내면 치지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유가 철학의 전통적인 격물론이다.

 

주자의 영향을 받은 퇴계👤는 기본적으로는 그의 입장을 계승했다. 당초 퇴계는 격물을 추구한 결과의 상태, 즉 물리가 전부 파악된 경지를 뜻하는 물격(物格)물에 격한것으로 보았다. 이는 물을 인식 대상으로 보고 인식 주체인 사람의 마음이 대상에 이른다는 의미이다. 그는 이런 관점이 주자의 생각에 부합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만년에는 물격에 대한 해석을 물이 격한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고자 하면 사물에 내재한 리가 마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일방적]❌으로 사물에 내재한 리에 다가가서 리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고자 하면 사물의 리가 사람의 마음에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이를 퇴계는 [리가 마음에 직접 이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탐구하는 것에 따라 이른다고 해석했다. 이렇게 본 까닭은 만약 리가 리의 자발성만으로 마음에 이른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사람들은 마치 [리가 물리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식 과정에서 [인식 대상인 리의 능동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인식 주체로서의 마음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리자도(理自到)’이다.

 

이처럼 퇴계가 리의 능동성을 무한정 허용한 것은 아니다. 리의 작용은 인식 과정에 참여하는 리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식 주체가 대상을 향해 인식 작용을 수행할 때, 인식 대상 역시 인식 주체를 향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맥락에 한정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퇴계는 인식 과정에서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모두에 작용이라는 유사성을 인정해 줌으로써 주자의 격물론을 자기 나름의 견해로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 김종석, ‘동양 철학의 인식론

@ 2021학년도 3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16~21번 (나).

(다음 지문과 함께 출제됨.)

 

서구 철학의 인식론(2021, 고3, 3월)^

서구 철학 전통에서는 앎, 즉 지식을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고 파악한다. 참인 믿음을 갖는 것만으로 지식을 가졌다고 말하기에 불충분한 이유는 우리가 어쩌다 참인 믿음을 가질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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