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디보 관련 도서의 국문판, 영문판 표지(이미지 출처: http://kbook.tistory.com/13)


발생(發生)이란 단세포의 수정란이 세포의 증식, 분화, 형태 형성을 거쳐 수십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복잡한 개체가 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다윈 시대부터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발생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에 주목했다. 즉, 단순한 생명체가 세대를 거듭하며 점차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것이 발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발상에서 출발한 진화발생생물학인 이보디보(EVO DEVO)는 공통의 조상 관계를 밝히기 위해 생물들의 발생 과정을 비교하여 발생 과정상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보디보는 발생 과정에서 생물의 부위 형성을 조절하는 ‘호메오 유전자’의 발견을 통해 학문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 미국의 생물학자 루이스와 그의 동료들은 초파리의 호메오 유전자 연구 과정에서, 호메오 유전자들이 세포 내의 유전자 복제 과정을 정교하게 작동시키는 지휘통제소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파리에서 호메오 유전자를 발견한 이후, 선충에서 코끼리까지 모든 동물에서 호메오 유전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예를 들어 쥐에게서도 호메오 유전자가 발견되었는데,  초파리의 경우처럼 유전자들의 배열 순서가 그들이 영향을 미치는 신체 부위의 순서와 일치하였다. 이는 호메오 유전자의 유사성이 발생 순서, 복합체 조직을 이루는 방식에까지 똑같이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계통적으로 아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종에서도 호메오 유전자가 매우 유사한 기능을 하게끔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눈의 발생과 관련된 유전자는 초파리에서는 아이리스 유전자이고, 쥐의 경우에는 스몰아이 유전자이다. 이들처럼 동물들의 눈을 형성하는 유전자를 팍스-6(Pax-6) 유전자라고 한다. 초파리와 같은 곤충의 눈은 겹눈이기 때문에 쥐와 같은 척추동물의 눈과는 구조와 재료, 그리고 작동방식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초파리의 아이리스 유전자를 생쥐에게, 생쥐의 스몰아이 유전자를 초파리에게 이식시켰을 때 두 경우 모두 유전자를 제공한 종이 아닌, 실험 대상 종에게 맞는 정상적인 눈이 발생한 것이다. 또한 초파리의 다리 발생 유전자 자리에 생쥐의 스몰아이 유전자를 이식했더니 초파리 다리에 초파리의 눈 조직이 발생한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따라서 초파리와 쥐의 공통조상이 팍스-6과 같은 호메오 유전자를 사용했으며, 진화의 과정에서 이러한 유전자가 계속하여 재사용되고 보존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처럼 초파리의 호메오 유전자의 발견에서 출발한 이보디보는 정설로 여겨졌던 진화생물학의 논리에 대항하여 진화와 발생의 오케스트라를 유전자가 지휘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즉 생명체의 중요한 발생 과정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으며, 이 유전자의 체계가 변하는 것이 바로 진화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 션 B. 캐럴, <이보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