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을 통해 촬영한 우주의 구조 ⓒ위키백과


1965년 미국 벨 전화 회사의 연구원인 펜지어스와 윌슨은 안테나를 이용하여 장거리 무선 통신 및 우주 전파 신호를 탐사하던 중 일정한 세기의 전파 잡음이 항상 잡힌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이 잡음이 우주로부터 하늘의 모든 방향에 걸쳐 거의 동일한 세기로 지구로 날아오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다른 과학자들은 대폭발로 생성된 우주가 팽창하면서 식어 갔다면 현재 우주에 남아 있어야 할 어떤 빛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이 빛을 찾고 있었다.


대폭발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약 137억 년 전 밀도와 온도가 매우 높은 상태의 대폭발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본다. 대폭발 초기 3분 동안 광자, 전자, 양성자(수소 원자핵) 및 헬륨 원자핵이 만들어졌다. 양(+)의 전하를 가지고 있는 양성자 및 헬륨 원자핵은 음(-)의 전하를 가지고 있는 전자와 결합하여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를 만들려고 하지만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는 전자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원자핵에 쉽게 붙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우주 탄생 초기에는 전자가 양성자에 붙들리지 않은 채 자유롭게 우주 공간을 움직여 다닐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양성자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전자를 자유 전자라고 하는데, 대폭발 초기에 빛은 자유 전자에 의해 물질 속에 갇혀 물질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빛이 빠져나올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당시의 우주는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매우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 이후로 우주가 계속 팽창했고 우주 탄생 후 약 40만 년이 지나자 자유 전자들의 간격이 벌어져 빛이 그 틈새로 빠져나가게 되어 우주가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또 이때 우주의 온도가 3,000K* 아래로 내려가 자유 전자가 양성자 및 헬륨 원자핵에 붙들려 결합되면서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가 만들어졌다. 빛의 경로를 가로막던 자유 전자라는 장애물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빛은 물질과 분리되어 아무 막힘없이 우주 공간 속으로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때가 우주가 완전히 투명해진 시점이며 이때를 ‘재결합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자유 전자에 가로막혀 있던 수많은 빛이 자유로운 항해를 시작하여 우주 전체로 균일하게 퍼져 나가게 되었는데, 이것을 ‘우주 배경 복사*’라고 한다. 우주 배경 복사는 만들어질 당시의 온도가 3,000K였다가 지구로 날아오는 동안 ㉠우주의 팽창과 함께 계속 식어서 현재 2.7K까지 내려갔다. 즉, 아주 뜨거웠던 대폭발 우주의 흔적이 오늘날 매우 차가워진 우주 배경 복사로 남아 있는 것이며, 재결합 당시보다 약 1,100배 낮은 온도인 바로 이 신호가 펜지어스와 윌슨에 의해 전파 잡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은하가 형성되기 훨씬 전에 만들어져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지구로 날아오고 있는 우주 배경 복사의 존재는 대폭발 우주론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K : 절대 온도(켈빈 온도)의 단위. 0K는 -273.15℃.

*복사(輻射) : 물체로부터 열이나 전자기파가 사방으로 방출됨.


― 정완호 외, ‘고등학교 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