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빗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올올이 치켜 올라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정전기 때문이다. 어떤 물체가 전기를 띠게 되는 것을 ‘대전(帶電)되었다’고 하는데, 대전된 물체의 전기가 다른 어딘가로 흘러가지 않고 멈추어 있을 때, 이 전기를 정전기라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는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전하인 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의 물질은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같아서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서로 다른 두 물체를 마찰하면 일부 전자가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이동하여 전자를 받아들인 물체는 음전하로, 전자를 잃은 물체는 양전하로 대전되어 정전기를 띠게 된다. 그런데 같은 전하끼리는 서로 밀어내고 다른 전하끼리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므로, 대전된 물체에서도 같은 전하를 띤 물체는 밀어내고 다른 전하를 띤 물체는 잡아당기는 힘이 작용하게 된다.   


현대 사회의 필수품인 복사기는 정전기의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 대표적 장치이다. 복사기 내부는 양전하로 대전된 감광체가 도포되어 있는 원통형 드럼과 음전하로 대전된 토너, 움직이는 광원, 열원, 정교하게 만들어진 여러 개의 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 정전기가 갖는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드럼과 토너이다. 


복사하려는 문서를 투명한 유리판 위에 올려놓고 복사 버튼을 누르면 유리판 아래로 빛이 지나간다. 문서의 검은 글씨 부분은 빛을 흡수하고 하얀 부분은 빛을 반사하여 원통형 드럼 위에 상을 형성한다. 이 원통형 드럼의 표면은 양전하를 띠고 있다. 그런데 드럼 표면에 빛이 닿으면 빛이 닿은 부분은 드럼 표면의 양전하가 드럼 내부의 음전하와 중화되기 때문에 전하를 띠지 않게 된다. 따라서 빛을 받지 않은 곳만 양전하 상태로 남게 된다. 이 상태의 드럼에 음전하를 띤 토너가 접근하면 양전하로 대전된 부분만 토너 가루를 끌어당겨 붙인다. 이 때 드럼 아래로 종이를 통과시키면서 그 종이에 드럼 표면의 전하보다 강한 양전하를 걸어주면 토너 가루들은 드럼에서 떨어져 그대로 종이로 옮겨 가 글씨를 형성한다. 이렇게 종이 위에 형성된 글씨는 정전기가 있는 동안만 유지된다. 그래서 그 글씨를 고착시키기 위해 이 종이를 180℃ 이상 되는 뜨거운 롤로 압착하면 복사가 완료되는 것이다. 


정전기는 복사기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매연 여과 장치의 필터에 정전기를 유도하면 미세 먼지들을 걸러낼 수 있다. 그리고 우주선의 외장재에 우주 먼지와 동일한 전하를 띠도록 정전기를 유도하면 우주 먼지가 들러붙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렇게 정전기의 원리는 복사기에서 우주선에까지 널리 활용되는 과학적 원리이다. 


복사기의 내부 구조도.


― 이창영, ‘과학으로 세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