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의 최초의 추상 수채화인「추상적 구성」


20세기 들어 서양미술은 대상의 사실적 묘사보다 회화의 조형적 특질을 강조하는 추상회화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회화의 조형 요소는 어떤 면에서는 음악의 구성 요소인 가락이나 리듬, 박자 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가사가 있는 노래도 있지만, 음악은 주로 추상적인 가락이나 리듬, 박자에 의해 구성되고,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미술 역시 주제나 내용 없이 색이나 선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구성할 수 있고, 그 구성으로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추상회화는 노래에서 가사를 없애듯 그림 속에서 스토리나 사실적인 표현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조형 요소에 의지해 제작한 작품이다. 그래서 비평가들은 추상회화 이전의 서양 미술을 ⓑ문학적인 미술로, 추상회화 이후의 서양 미술을 ⓒ음악적인 미술로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추상회화의 출현은 서양 미술에서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추상회화는 1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이 사실은 추상회화의 속성과 관련해 중대한 의미가 있다. 전쟁 직전의 유럽 사회는 이성과 합리주의의 발달로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물질생활이 풍요해졌지만 빈부 격차가 극심해 계급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1차 대전은 이러한 서양 문명의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한 전쟁이었다. 이성과 합리주의는 문명의 파괴와 대학살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왔고, 사람들은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미술 또한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등장한 추상회화는 이성과 합리주의에 근거한 과학적인 원근법과 광학법칙, 해부학의 이해 등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서양 미술의 사실주의 전통을 모두 부정했다. 그러면서 추상회화는 점점 비구상적으로 변해갔다.


추상회화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은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였다. 그가 추상회화를 시도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느 날 밖에서 일을 마치고 화실로 들어온 그는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이 얼마 전에 그린 그림을 옆으로 잘못 놓은 것이었다. ㉡착각임을 알고 난 다음에 본 그림은 이전처럼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주제와 ⓓ형상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까닭에 오히려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는 칸딘스키의 일화는 미술이 주는 감동이 이야기나 형상을 넘어 조형 요소만으로도 가능함을 말해준다. 칸딘스키는 색채와 선, 면 등의 조형 요소가 일상의 뒤에 감춰진 깊은 정신적 진리를 드러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느낌을 중시한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이런 느낌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구현하려 했는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추상회화는 결국 외부 세계를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내면 세계를 표현한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추상회화에서는 외부의 형상을 제아무리 열심히 모방하고 잘 표현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화가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미술은 다른 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므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기 안에서 찾는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이 극단적인 모순과 갈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을 때 추상회화는 이렇듯 인간의 내면으로 눈을 돌려 인간 내면의 ⓔ울림을 담아내려 했다.


― 이주헌, ‘추상회화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