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사(寂滅寺)에는 청허(淸虛)라 하는 한 이름 높은 선사가 살고 있었다. 그는 천성이 어질었고 마음 또한 착했다. 추운 사람을 만나면 입었던 옷을 벗어 주었다. 배고픈 사람을 보면 먹던 밥도 몽땅 주어 버렸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추운 겨울의 봄바람’이라거나 ‘어두 운 밤의 태양’이라거나 하고 우러러 받들었다. 그런데 국운은 나날이 쇠퇴하였고, 호적(胡狄)이 침입하여 팔도강산을 짓밟았다. 상감은 난을 피하여 고성에 갇혔고, 불쌍한 백성들은 태반이 적의 칼에 원혼(冤魂)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저 강도(江都)의 참상은 더욱 처절했다. 시신의 피는 냇물처럼 흘렀고, 백골이 산더미 처럼 쌓였다. 까마귀가 사정없이 달려들어 시신을 파먹었으나 장사 지낼 사람이 없었다. 오직 청허 선사만이 이를 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