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전통문화 (10)

독서/예술

한국 줄타기가 지닌 긴장과 이완의 반복 구조(2014, 고3, 4월B)

한국의 줄타기는 줄광대와 어릿광대, 악공, 관중이 서로 어울려 삶의 애환과 신명을 공유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종합예술이다. 줄타기는 기예, 재담, 노래 등을 연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극적 상황에 따라 관중이 참여하기도 한다. 줄광대는 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기예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줄 아래 지상의 어릿광대나 악공, 관중과도 재담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연행 방식은 줄광대가 올라서 있는 줄이라는 수평적 공간에서부터 관중이 위치한 공간으로까지 극적 공간을 수직적으로 확대시킨다는 측면에서 입체적이다. 줄타기는 긴장과 이완의 반복 구조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줄타기는 전체적으로 ‘줄고사 - 기예Ⅰ- 놀이 - 기예Ⅱ- 마무리’ 등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먼저 참가자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는 줄고사로 연희의 ..

독서/예술

한옥의 창호(2013, 9월모평A)*

창은 채광이나 환기를 위해서, 문은 사람들의 출입을 위해서 건물 벽에 설치한 개폐가 가능한 시설이다. 일반적으로 현대적인 건축물에서 창과 문은 각각의 기능이 명확하고 크기와 형태가 달라 구별이 쉽다. 그러나 한국 전통 건축, 곧 한옥에서 창과 문은 그 크기와 형태가 비슷해서 구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창과 문을 합쳐서 창호(窓戶)라고 부른다. 이것은 창호가 창과 문의 기능과 미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런데 창과 문을 굳이 구별한다면 머름이라는 건축 구성 요소를 통해 가능하다. 머름은 창 아래 설치된 낮은 창턱으로, 팔을 얹고 기대어 앉기에 편안한 높이로 하였다. 공간의 가변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옥에서 창호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여러 짝으로 된 큰 창호가 한쪽 벽면 전체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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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탈(2010, 고3, 7월)

발탈은 조종자가 노출된 발에 얼굴탈을 얹고, 인형의 양팔에는 줄을 묶어 조종하면서 진행하는 전통 연희이다. 발탈의 외형은 하체는 없고 상체만 있으며, 인형의 팔은 긴 한삼을 끼고 있다. 조종자는 포장막 뒤에서 비스듬하게 누워, 내민 한 발로 얼굴탈을 조종하고, 손은 대나무와 끈을 통해 발탈의 상체를 조종한다. 발탈의 인물은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극중 대사로 보아 생선 장사로 먹고 사는 인물이다. 발탈은 어찌 보면 인형극 같기도 하고, 또한 가면극 같기도 하다. 우선 발탈이란 명칭만 보아서는 발에 탈을 씌워 논다는 점에서 가면극이지만, 탈을 조작하는 사람이 포장막 뒤에서 조종만 한다는 점에서 인형극으로 볼 수도 있다. 꼭두각시놀음과 비슷한 시기에 비롯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탈의 놀이판은 가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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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음악의 특징(2007, 고3, 7월)

음악은 음을 재료로 하여 이루어지는 예술이므로 재료인 음이 다르면 음악도 달라진다. 우리 음악에서 사용하는 음은 악기 소리든 노랫소리든 서양 악기나 서양 발성의 소리와 확연히 다른 특징이 있다. 서양의 악기나 발성법이 공명 위주로 소리를 띄우고 둥글게 밖으로 내보내려 하는데 비하여, 우리의 악기나 발성법은 공명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소리를 안에서 잡고 있으면서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며 재료의 본질을 살려 소리를 낸다. 전통음악은 공명 못지않게 재료 본연의 자연스러운 소리를 중시하기 때문에, 가야금과 대금을 만들 때에는 재료인 오동나무와 대나무를 고르는 데 정성을 쏟고, 판소리 명창은 목을 단련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전통음악의 특징은 장단에 잘 나타나 있다. 서양음악의 박자 구조와 달리 전통음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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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악과 시나위(2005, 고3, 7월)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은 대체로 크게 정악과 속악으로 나뉜다. 정악은 왕실이나 귀족들이 즐기던 음악이고, 속악은 일반 민중들이 가까이 하던 음악이다. 개성을 중시하고 자유분방한 감정을 표출하는 한국인의 예술 정신은 정악보다는 속악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 속악의 특징은 한 마디로 즉흥성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될 수 있다. 판소리나 산조에 ‘유파(流派)’가 자꾸 형성되는 것은 모두 즉흥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흥으로 나왔던 것이 정형화되면 그 사람의 대표 가락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독특한 것이면 새로운 유파가 형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즉흥이라고 해서 음악가가 제멋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곡의 일정한 틀은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 즉흥 음악의 특색이다. 가령 판소리 명창이 무대에 나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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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의 역사적 형성 과정(2005, 6월모평)

분청사기는 전통 도자 양식 중 하나로서 점토[청자토]로 만든 형상 위에 화장토[백토]를 칠한 전후에 바탕을 장식하고 유약을 발라 구워 낸 그릇을 말한다. 고려 말 퇴락해 가던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등장한 분청사기는 조선 중기 이전까지 널리 쓰였다. 우리나라 도자기 중에서는 가장 순박하고 서민 적이며, 일상의 생활 용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예술적 조형미도 매우 뛰어났다. 퇴락해 가는 예술로부터 태어나 실용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던 분청사기는 어떻게 해서 예술성을 얻게 되었을까? 분청사기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는 국가에서 도자의 생산과 유통을 관장하였다. 서남해안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요(官窯)에서는 국가의 강력한 보호와 규제 속에 상감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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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문학에서의 이면 그리기(2004, 수능)

"천운 우습 깊은 밤에 모진 광풍이 일어나 바람은 우루루루루루루 쇄......." 가운데 춘향이 갇혀 있는 옥방(獄房)의 광경을 묘사한 '옥중가'의 한 대목이다. 이 소리를 듣고 바람이 천장을 휘몰아서 마룻바닥을 스쳐 가는 음산한 옥방의 분위기가 느껴져 청중이 공감하게 되었다면, 창자(唱者)는 이 대목의 이면을 잘 그렸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렇다면 이면을 그린다 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린다'는 말은 소리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창자의 음악 행위를 나타내 므로, 이면은 당연히 음악 행위에 의해 구현된 그 무엇에 해 당한다. 창자는 소리를 통해 사설의 내용인 옥방의 광경을 묘사했으니, 이면이란 사설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옥방의 광경을 제대로 묘사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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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춤의 특성(2004, 고3, 4월)

한국 전통 춤이 가진 특성의 하나를 단적으로 일러 주는 것으로서 “손 하나만 들어도 춤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겉으로는 동작이 거의 없는 듯하면서도 그 속에 잠겨 흐르는 미묘한 움직임이 있어 수많은 움직임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집중하여 완결시킨 경지이다. 이를 흔히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한다. 한국의 민속악이나 민속춤에서는 ‘장단을 먹어 주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바로 이러한 대목이야말로 불필요한 것이나 잡다한 에피소드를 없애는 순간이다. 그것은 곧 동양 회화에서의 여백에 해당되고, 한국 음악에서 음과 음 사이의 빈 시간․공간을 채워 주는 농현(弄絃)에 해당된다.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는 ‘장단을 먹어 주는’ 대목은 맺힌 것을 풀어 주는 이완일 경우도 있고 풀린 것을 맺어 주는 긴장일 경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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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의 구조와 특징(1994, 수능)

지붕은 집이 위치하는 지역의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지붕의 형상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지역의 기후라고 할 수 있다. 지붕의 크기는 ㉠처마의 깊이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처마의 깊이는 처마 폭에 의해 결정되는데, 처마 폭은 도리로부터 지붕 끝까지의 너비를 말한다. 처마가 깊다 깊지 않다 하는 것은 기둥의 높이에 비해 처마 폭이 얼마나 넓은지를 가늠하여 하는 말이다. 처마를 깊게 잡는 구조는 우리 나라 건축의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태양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중부 지방, 대략 북위 38도선 부근에서의 하짓날 태양의 남중 고도는 약 70도의 각도를 지닌다. 중천에 뜬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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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의 유래(1994, 수능)

6세기 초반,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를 모방하여 가야금을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보다 오래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고분에서 오늘날의 가야금과 같은 모양의 악기를 들고 있는 흙인형이 출토되었고, 3세기 후반 중국 진(晉)나라의 진수(陳壽)가 쓴 에 우리 나라 남부 지방[변진(弁辰)]에 지금의 가야금 비슷한 현악기가 존재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가실왕의 가야금 창제설, 특히 중국 악기의 모방이라는 의 기록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고, 오래 전부터 전해 오던 우리 악기를 가실왕이 중국 악기를 참조하여 개량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야국의 악사인 우륵이 신라에 투항하고, 그를 통하여 가야의 음악이 신라에 정착되는 과정은 당시의 음악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