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Boxed Water Is Better on Unsplash

 

 

조선 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시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시가(四時歌)는 일반적으로 사계절의 순서에 따른 완상을 담은 노래들을 뜻한다. 고려 중기 이후 사대부층 사이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었는데, 사시가는 이러한 관심과 중국 한시 및 고려 한시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사시가는 1년을 열두 달로 나누어 각 달의 세시 풍속이나 정서 등을 노래한 월령체가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월령체가는 주로 민요에서 나타나는 데 비해 사시가는 한시나 가사, 연시조에서 주로 나타난다. 특히 각 연이 유기적으로 구성된 연시조는 사시의 흐름을 담아내기에 적합했다.

일반적으로 사시는 사계절로 인식된다. 그러나 시간 인식의 기준에 따라 사시는 한 달의 네 때인 삭(朔), 현(弦), 망(望), 회(晦)를 의미할 수도 있고, 하루의 네 때인 아침, 낮, 저녁, 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초기의 사시가는 주로 사계절을 나열하는 단조로운 시상 전개를 보인다. 그러나 중기 이후의 사시가는 일 년 사시와 하루 사시의 복합적인 구성을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 즉 ‘[춘(아침→낮→저녁→밤)]→[하(아침→낮→저녁→밤)]...’과 같이 일 년 사시의 흐름 속에서 각 계절마다 하루의 사시를 모두 포함하거나, ‘[춘:아침]→[하:낮]→[추:저녁]→[동:밤]’과 같이 일 년 사시와 하루 사시가 대응된 방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상 전개 양상이 단순하든 복합적이든 사시의 흐름은 순차성을 띠면서도 의미상 겨울에서 봄으로, 밤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작품에 따라 순환성이 표면에 부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순환성에 대한 인식은 시간적 영원성에 대한 소망, 즉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무한을 추구하려는 소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시간적 영원성에 대한 소망을 성취할 수 있는 장소로서 인간은 이상향을 지향하게 되는데 사시가에서 자연은 이러한 이상향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시가에서 나타나는 이상향으로서 자연의 모습은 당대의 현실이나 작가의 삶과 관련되어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즉 속세와 단절되어 은자(隱者)로서의 삶을 누리는 공간으로 형상화되기도 하고, 속세와 단절되지 않은 연장선상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벼슬에서 은퇴한 사대부이든 정치 흐름에서 도태되어 자연으로 돌아온 사대부이든 향촌에서 농민과 함께하던 사족(士族)이든 자연을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공간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런 점에서 사시가는 사시 순환의 질서 속에서 자연을 심미의 대상, 소박한 삶의 공간, 노동의 삶이 드러나는 생활 공간 등으로 인지하고 그 속에 자신의 생활을 합치시키고자 하는 ㉠ 사대부층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강호(江湖)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잇다
소정(小艇)에 그물 실어 흘리 띄워 던져 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해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 맹사성,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추(秋)> -

 

가령, 사시가 계열 연시조의 첫 작품인 위 시조의 경우 벼슬에서 물러난 작가가 강호 자연에서 계절별로 느끼는 흥취와 여유로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자연은 유교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이상적인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