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 ~ 1866) ⓒ 네이버 캐스트 수학 산책 - 리만 가설


유클리드는 ‘차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길이·폭·깊이라는 사물의 성질에 수학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직선은 전형적인 일차원적 사물로 정의되는데, 이는 직선이 길이라는 단 하나의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길이와 폭이라는 성질을 갖고 있는 평면은 이차원적 사물의 전형이며, 길이·폭·깊이를 모두 갖고 있는 입체는 삼차원적 사물의 전형이다. 이렇게 유클리드 시대의 수학은 삼차원 세계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수학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유클리드 이후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도 이 세계는 계속해서 삼차원으로 인식되었다. 사차원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수학적으로는 터무니없다고 무시되었다. 위대한 천문학자 톨레미조차 사차원에 대한 생각을 믿지 않았다. 공간에 서로 수직하는 세 직선을 그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와 같은 네 번째의 축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근대에 들어서 프랑스의 수학자 데카르트는 유클리드와 다른 방식으로 기하학에 접근했다. 대상의 길이·폭·깊이가 아닌 ‘좌표’라는 추상적 수치 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어떤 사물의 차원은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좌표의 개수와 상관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선은 오직 하나의 좌표를 사용하여 나타낼 수 있으므로 일차원이며, 두 개의 좌표를 써서 나타낼 수 있는 평면은 이차원이다. 같은 방법으로 입체가 삼차원인 이유는 이를 나타내기 위하여 세 개의 좌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클리드의 차원이 감각적인 대상의 특성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질적이라고 한다면, 데카르트의 차원은 추상적인 수치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양적이었다. 그는 사차원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다가 결국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는데, 눈으로 보여 줄 수 없는 것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당시 수학자들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차원의 개념이 인정을 받은 것은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리만에 이르러서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좌표에 대한 정의를 활용하여 0차원에서 무한대의 차원까지 기술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였다. 그에 따르면, 감지할 수 있는 공간에서만 수학적 차원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단지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개념적 공간을 언급할 수 있으면 족한데, 그는 이를 다양체(manifold)라는 개념 속에 포괄하였다. 다양체는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의 개수만큼의 차원을 갖게 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여 이루어지는 어떤 대상이나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무한 차원에 가까운 다양체라고 할 수 있다.


차원에 대한 정의를 자유롭게 만든 리만 덕택에, 아인슈타인은 이 우주가 사차원의 다양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공간을 이루는 세 개의 차원에 시간이라는 한 개의 차원을 더하면 우주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마이클 길롄, ‘무한으로 향하는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