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왕국의 벽화.
'이집트 신왕국의 벽화'는 그리스 예술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집트의 벽화나 회화에 그려진 인물은 대개 머리는 옆을 향하고, 상체는 앞을 향하며, 다시 발은 옆을 향한다. 이런 특이한 묘사 방식에 학자들은 ‘정면성의 원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원리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물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측면에서 묘사하여, 되도록 사물의 형태를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가령 인간의 얼굴이 옆에서 볼 때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면 연못은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물고기는 누워 있을 때 그 형태가 온전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집트인들의 관심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보다는, 사물의 본질적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도록 그리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겐 우연적이며 일시적인 인물의 동작이나 자세는 별 의미가 없었고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인물의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예술은 하나의 시각적 추상인 셈이다. 추상적인 그림에서의 인물은 구체적인 어떤 인간이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으로 나타난다. 하쳅수트 여왕의 탄생을 그린 이집트의 벽화는 갓 태어난 여왕을 사내아이로 묘사하고 있다. 성별 따위는 제왕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라는 개념이 우리집 강아지와 이웃집 도사견을 구별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특정한 어떤 개는 죽어도 개의 ‘개념’은 결코 죽지 않듯이 이집트의 인물상은 결코 죽을 것 같지 않고, 삶과 죽음을 넘어선 저 영원한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듯이 보인다.
이집트인들은 왜 이런 묘사 방식을 택했을까? 보링거의 설명은 이렇다. 그리스처럼 축복받은 땅에선 인간과 자연 사이에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때 사람들은 ‘감정 이입 충동’을 갖게 되고, 그 결과 그리스 예술처럼 유기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양식이 발달한다. 하지만 이집트처럼 자연 환경이 척박한 곳에선 광막한 외부 세계가 인간에게 끊임없이 내적 불안감을 일으킨다. 이때 사람들은 이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추상 충동’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양식이 발달한다.
이집트인들이 추상적 양식을 발달시킨 이유가 꼭 환경의 소산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영혼이 부활한다고 믿었고 영혼이 부활하려면 그것이 깃들어 있을 육체가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자의 몸을 미이라로 보존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이라는 파손되기 쉬웠기 때문에 이를 조상(彫像)이나 회화로 대체했다. 이때 조각이나 회화 속에 죽은 자의 신체를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하기 위해 정면성의 원리라는 묘사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한 팔이 몸통에 가려 안 보이면, 그 사람은 영원히 외팔이로 살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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