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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사회는 촌락 공동체의 특징적 요소인 지역성, 사회적 상호 작용, 공동의 결속감 등이 자연스럽게 구현되고 재생산되기에 적합한 사회 경제적 구조가 전제 조건이었다.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는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빠짐없이 고루 갖추고 있는 집단에만 적용할 수 있는 명칭이었으나 현대인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희구와 열망은 본래적 개념의 경계를 넘어서 공동의 목적과 이념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운동을 시도해 왔다. 


도시 공동체는 도시를 기본 단위로 도시의 주거ㆍ직장ㆍ여가활동을 위해 필요로 하는 시설, 자원, 제도가 사람이 사는 터전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로서 자연 발생적 공동체가 아닌 ‘의도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의도적 공동체’ 가운데 ⓐ코뮌(commune)은 구성원들이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어 일정한 테두리 속에서 일상적 상호 작용을 하며, 정서적으로도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다. 이 코뮌은 생산물과 재산의 사적 소유를 금지하고 모든 것을 공동 분배ㆍ관리하는 공산제적 성격의 집단을 그 전형(典型)으로 하며, 코뮌의 참여자들은 애초부터 어떤 이념 기치 아래 자발적으로 공동의 생활을 영위한다. 코뮌에서는 모든 경제 행위와 인간 관계, 문화 활동 등 생활의 전 영역을 공동으로 해결하므로 주거 공간과 노동 조건 같은 삶의 자족적 시스템이 창출(創出)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코뮌 같은 공동 생활의 자족적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공간적 근접성으로 인한 상호 접촉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높고,공동의 이해 관계를 발견하기가 비교적 쉬운 기존의 물리적 조건을 활용해서 ㉠공동체적 요소가 강한 사회 문화적으로 동질화된 세력을 구성하려는 시도(試圖)를 한다. 또한 생활의 영역 가운데 가장 주된 관심사 한 두 가지의 공동 이해(利害)를 기반으로 단일한 목적이나 이념을 갖는 사람들로 목적 지향적 집단인 ‘협동 조합’을 구성하려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실제 도시에서 시도되는 공동체의 성격을 보면 공동체적 요소들의 다양한 조합(組合)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유형화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테면 아파트와 같은 ⓑ정주(定住) 공동체는 구성을 시도하는 시점부터 거주 시설의 집단화라는 조건이 있으므로 지역성 즉, 공간 근접성은 높지만 구성원들의 목적 의식이나 가치관의 동질성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다.


협동 조합은 일단 공동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그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고유한 이념을 확산하고 심화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이념으로 뭉친 결사체보다는 덜 하지만 뚜렷한 가치 지향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역성은 참여자들의 삶의 ㉡터전이 밀접해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코뮌의 경우는 생활의 대부분을 긴밀하게 공유하므로 지역성과 이념성이 모두 높은 반면, ⓒ이념적 결사체는 공간 근접성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공동체 운동은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가 이질적인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사회 문화적 동질화를 꾀하는 한편, 참여자들의 관심과 사고 범위가 개인의 이익에 국한되거나 집단 이기주의로 흐르지 않고 이웃, 지역 사회, 시민 사회 전반의 유익함을 고려하는 경향성을 갖고 있다. 공동체 운동을 통해서 이러한 개인의 의식의 발전, 사고의 전환이 가능하다면 공동체 운동은 매우 더디지만 사회 전체의 변화를 기약한다고 할 수 있다. 


― 최병두 외, <도시공동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