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가의 창시자, 묵자(기원전 470년(추정) ~ 기원전 391년(추정))

 

 

명(名)과 실(實), 즉 이름과 실재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명실(名實)의 문제는 정치,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다루어지다가 전국 시대 중엽 이후에 하나의 독립적인 영역을 가진 철학적 주제로 정립되었다. 이 시기에 이렇게 명실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사상가와 학파가 공손룡과 후기 묵가(墨家)로, 이들 사이에서는 철학적 논쟁의 국면이 펼쳐졌다.

 

명가(名家) 사상가인 공손룡[각주:1]은 ‘실’이 ‘물(物)’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물’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상태의 천지 만물을 뜻한다. ‘실’은 ‘물’에서 분화된 각각의 개체이고, 이를 지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명’이다. 인간이 붙이는 ‘명’은, 인간과 무관하게 분화되어 있는 ‘실’들 사이의 다름을 인간의 입장에서 구별하여 확정하고, 인간이 사상과 감정을 주고받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어떤 ‘실’은 그것을 가리키는 어떤 ‘명’에 의해서만 유일하게 지시되어야 한다는 것과, 어떤 명은 유일하게 어떤 실만을 지시하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공손룡에 따르면 서로 다른 실인 이것[此]과 저것[彼]이 똑같이 ‘이것’이라는 명으로 지시된다면 서로 구별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이것’이라는 명으로 이것이라는 실을, 다른 사람은 ‘이것’이라는 명으로 저것이라는 실을 지시하는 혼란이 나타나게 된다. 그는 명과 실의 엄격한 일대일 대응 관계를 통해, 명이 그 역할을 할 때 오해나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 하였다.

 

그는 ‘흰 말[白馬]은 말[馬]이 아니다.’라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앞세워 논의를 폈다. 그런 주장의 근거로, 우선 그는 ‘말[馬]’은 형체를 부르는 데 쓰는 단어이고 ‘희다[白]’는 색을 부르는 데 쓰는 단어인데, 흰 말은 말에 ‘희다’라는 속성이 함께하는 것이므로 말과 다르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말을 구할 때는 노란 말이든 검은 말이든 데리고 올 수 있지만 흰 말을 구할 때는 노란 말이나 검은 말을 데리고 올 수 없으니, 이를 통해 말과 흰 말이 다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일상에서 흰 말이 있을 때 ‘말이 있다.’라고 하며 특정 속성이 지정되지 않은 ‘말’이라는 단어로 흰 말처럼 특정 속성을 가진 말[馬]을 지시하는 것에 대해, 공손룡은 ‘말’이라는 명과 ‘흰 말’이라는 명은 지시하는 실이 다르므로 그 용법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였다.

 

반면 후기 묵가는 ‘흰 말은 말이다. 흰 말을 타는 것은 말을 타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흰 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반대하였다. 후기 묵가는 어떤 실은 ‘이것’이라는 명에 의해 지시되면서 동시에 ‘저것’이라는 명에 의해서도 지시될 수 있다고 보았다. 흰 말은 흰 말이고 검은 말은 검은 말이지만 흰 말도 말이고 검은 말도 말이므로, 흰 말은 흰 말이면서 말이고 검은 말은 검은 말이면서 말이라는 것이다.[각주:2] 즉, 흰 말은 흰 말이라는 명과 말이라는 명으로, 검은 말은 검은 말이라는 명과 말이라는 명으로 지시될 수 있다. 또한 후기 묵가는 하나의 명이 지시하는 실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주장에도 반대하였다. 하나의 명이 서로 다른 사물을 지시할 수 있다고 하면서, ㉠ 이것과 저것, 두 마리의 새가 모두 학이라면 이것과 저것을 모두 ‘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예시를 들었다.

 

후기 묵가가 명과 실의 엄격한 일대일 관계를 이렇게 부정한 것은 그들의 명에 대한 논의와도 관계가 있다. 후기 묵가는 명을 그것이 지시하는 실에 따라 달명(達名), 유명(類名), 사명(私名)으로 나누었는데, 이 세 가지 명은 외연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 달명은 천지 만물을 총괄하여 지시하는 것으로, 공손룡이 말하는 ‘물(物)’에 해당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유명은 수많은 사물 가운데 어느 하나의 속성을 공유하는 것들을 지시하는 이름으로, 후기 묵가는 그 예로 ‘말[馬]’이라는 명을 제시했다. 사명은 가리키는 대상이 오직 하나인 명을 말한다. 사명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고유명사이다. 다른 하나는 ‘새[鳥]’라는 유명을 어떤 한 마리의 특정한 새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경우처럼 유명을 단 하나의 개체에만 대응하게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명이다. 결국 ‘새[鳥]’라는 명이 유명인가 사명인가 하는 것은 그것에 대응하는 대상이 하나인가 둘 이상인가에 의해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 2023학년도 4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10~13번

(출전) 김철신, 「공손룡과 후기 묵가의 정명론 비교 연구」

 

 

 

 

  1. 공손룡은 조(趙)나라 사람인데, 태어나고 죽은 날짜를 정확하게 고찰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조나라 무령왕 때부터 효성왕이 재위에 있을 때까지 살았던 것을 미루어 볼 때, 대략 기원전 325년경에 태어나 기원전 25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방박(龐樸), 공손룡자금역(公孫龍子今譯) , 성도(成都): 파촉서사(巴蜀書社), 1990, 1쪽 참조). (편집자 주: 출전인 논문에서 주석 직접 인용.) [본문으로]
  2. 이 문장 진짜 웃김.. ㅋ (편집자 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