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Photo by BBiDDac on Unsplash)



㉠근대 철학에서는 대상이 지닌 고정된 진리나 고유한 본질에 해당하는 동일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동일성을 그대로 표상하는 것, 즉 얼마나 유사하게 동일성을 재현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들뢰즈는 표상이 대상들이 지닌 차이를 동일성에 종속시키는 것이라 비판하였다. 들뢰즈는 대상이 다른 대상들과 관계 맺으며 펼쳐지는 무수한 차이를 긍정하며 세계를 생성의 원리로 설명하고자 했다.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란 두 대상을 정태적으로 비교해서 ⓐ나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두 대상이 만나고 섞임으로써 ‘생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A)’과 ‘자동차(B)’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A는 원래 땅 위를 달리며, 달리기와 관련된 근육이 발달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A가 달리기 대신 B를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운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A는 달리는 근육 대신 브레이크나 엑셀을 밟는 근육이 발달할 것이다. A는 땅과 자동차 중 어느 것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이전의 A와는 다른 차이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이는 A에게 ‘자동차 운전을 잘하게 된 사람’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생성’이다.


또한 들뢰즈는 대상과 대상이 연결되어 서로를 변화시키는 생성의 과정을 주름 개념으로 설명한다. 새로 산 옷을 입으면, 이 옷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주름이 ⓑ생긴다. 이 주름은 옷 자체 혹은 외부로부터 받은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 결국 주름은 대상 자체의 내재적 원인에 의해 혹은 차이를 지닌 대상 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생성된 주름은 시간의 연속된 흐름 속에서 다시 다른 대상들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 관계를 맺는 대상들은 처음과는 차이가 나는 새로운 주름을 계속해서 생성해 나간다. 따라서 주름에는 시간적 개념과 변형이 포함됨을 알 수 있다.


들뢰즈가 제안한 ‘주름’ 개념은 현대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현대 랜드스케이프 건축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랜드스케이프 건축가들은 대지와 건물, 건물과 건물,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각각의 고정된 의미로 분리하여 바라보려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관점을 거부하고 이들을 하나의 주름 잡힌 표면, 즉 서로 관계 맺으며 접고 펼쳐지는 반복적 과정 속에서 생성된 하나의 통합된 공간으로 보고자 하였다. 그동안 건축에 서는 대지와 건물이 인간에 의해 그 역할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수동적 존재로 파악되었었는데, 현대 건축에서는 대지와 건물 자체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작동한다.


랜드스케이프 건축에서 나타나는 연속된 표면은 대지와 건물의 벽, 천장을 하나의 흐름으로 생성하면서 대지와 건물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통합되기도 하고, 건물 자체가 대지를 완전히 ©덮어서 대지와 건물이 통합되기도 한다. 그리고 연속된 표면은 주름처럼 접히고 펼쳐지면서 공간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공간은 그 성격이 고정되지 않고 우연적인 상황 혹은 주변의 여러 가지 요인의 전개로 인해 재구성될 수 있는 잠재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흐름은 연속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물의 안과 밖이 자연스럽 게 연결되기 때문에 건물의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된다. 이를 통해 건물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선과 외부에서 내부를 바라보는 응시를 동시에 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우리나라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이러한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건물이다. DDP의 표면은 주름진 곡선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건물 전체가 대지를 덮고 있는 형상을 띠고 있다. 또한 주름진 곡선에 의해 만들어진 내부의 공간들은 디자인 전시관으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패션 행사나 다양한 체험 마당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특히 DDP는 기존에 있던 지하철역이 건물의 지하 광장과 건물의 입구로 이어지도록 만들어졌으며, DDP 외부의 공원과 건물 간의 경계가 없어 공원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건물의 내부로 이어지고, 내부에서 옥상의 잔디 언덕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다시 건물 밖의 공원으 로 나오게 되는데, 이런 점 때문에 DDP는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과 통합을 추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출전) 정인하, <질 들뢰즈의 ‘주름 Pli’ 개념과 랜드스케이프 건축>
@ 2019학년도 7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28~3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