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공예 (3)

독서/예술

스튜디오 공예(2012, 고3, 7월)

공예를 예술로 볼 수 있을까? 공예품은 미적 대상일까? 18세기 후반에 발달한 근대 예술철학은 아름다움을, 외적인 목적 없이 대상에 내재해 있는 의미라고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예술과 비예술, 특히 순수미술과 공예를 구분하여 공예를 예술로 볼 수 없게 만들었으며, 기능과 미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잣대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순수미술은 대상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미적인 의사소통이다. 이는 작가가 대상에 담은 의미를 관람자가 관람을 통해 재구성해 내는 행위로 실현된다. 이때 작가가 대상에 담은 의미는 대상의 외적 목적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공예는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외적 목적을 지닌 것으로, 실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사물을 만드..

독서/예술

금으로 된 신라의 장신구들(2006, 고3, 4월)

우리나라 금속 공예 역사의 시작은 청동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기원전 약 10세기 즈음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철기 시대를 거쳐 삼국 시대로 들어오면서 기술이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특히 금으로 된 신라의 장신구들은 문양이 정밀하게 새겨져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에는 신라를 ‘눈부신 황금의 나라’로 표현하고 있다. 이 표현에 딱 맞는 유물이 바로 금으로 만든 허리띠이다. 이 허리띠는 금관보다도 두세 배나 많은 금을 ㉠들여 만들었는데, 풀잎무늬를 새겨 넣고 그 아래로 여러 줄의 드리개*를 길게 늘어뜨렸다. 드리개 끝에는 약통이나 물고기, 숫돌, 족집게, 굽은옥, 손칼, 살포** 등의 도안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원래 허리띠에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생활하는 방식은 북방 유목 민족의 풍습이었..

독서/예술

분청사기의 역사적 형성 과정(2005, 6월모평)

분청사기는 전통 도자 양식 중 하나로서 점토[청자토]로 만든 형상 위에 화장토[백토]를 칠한 전후에 바탕을 장식하고 유약을 발라 구워 낸 그릇을 말한다. 고려 말 퇴락해 가던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등장한 분청사기는 조선 중기 이전까지 널리 쓰였다. 우리나라 도자기 중에서는 가장 순박하고 서민 적이며, 일상의 생활 용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예술적 조형미도 매우 뛰어났다. 퇴락해 가는 예술로부터 태어나 실용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던 분청사기는 어떻게 해서 예술성을 얻게 되었을까? 분청사기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는 국가에서 도자의 생산과 유통을 관장하였다. 서남해안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요(官窯)에서는 국가의 강력한 보호와 규제 속에 상감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