굔기 라키의 ‘못(Spike)’
공예를 예술로 볼 수 있을까? 공예품은 미적 대상일까? 18세기 후반에 발달한 근대 예술철학은 아름다움을, 외적인 목적 없이 대상에 내재해 있는 의미라고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예술과 비예술, 특히 순수미술과 공예를 구분하여 공예를 예술로 볼 수 없게 만들었으며, 기능과 미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잣대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순수미술은 대상이 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미적인 의사소통이다. 이는 작가가 대상에 담은 의미를 관람자가 관람을 통해 재구성해 내는 행위로 실현된다. 이때 작가가 대상에 담은 의미는 대상의 외적 목적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공예는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외적 목적을 지닌 것으로, 실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사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예품이 가진 기능이라는 목적 때문에 공예가는 미적 의도를 드러낼 수 없는 것일까? 공예품은 관람자에게 미적 경험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것일까?
전통적인 도제, 길드 제도 하의 ㉠‘공방 공예’는 공방의 이름이 공예가의 이름보다 앞서 있었다. 공예가들은 공방의 이름과 스타일 아래 종속되어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었을 뿐 자신만의 창조적인 개성을 펼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현대 공예의 한 흐름인 ㉡‘스튜디오 공예’는 공예의 개념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스튜디오 공예는 공예품으로부터 기능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제거하여, 기능을 부차적인 혹은 임의적인 속성으로 변화시켰다. 위의 그림은 ㉢굔기 라키의 ‘못(Spike)’이라는 작품으로, 바구니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나뭇가지들이 못으로 연결되어 위험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결국 실용적 사물인 바구니를 사용하기 불편하고 불친절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기능의 파괴를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바구니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상에 작가의 의도를 담게 된다.
스튜디오 공예는 공예품이 실제 기능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실제 기능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으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공예품에 있어 미적 표현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공예가에게도 작품 속에 자신의 미적 의도를 담을 수 있음을 뜻하는 매우 극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스튜디오 공예가 의미하는 바를 단순히 공예와 순수미술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만 공예를 대하는 생각의 틀이 그 미적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거나 제한하는 편견에 갇혀 있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하워드 리사티, <공예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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