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연극으로 유명한 '피나 바우쉬'의 작품 중에서.
최근에 새로운 경향의 공연 예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춤과 연극의 경계를 허무는 한편, 기승전결을 지닌 기존의 작품 구조를 해체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무엇보다도 논리와 이성이 투영되지 않은, 신체의 언어를 중요하게 사용함으로써, 춤에서는 연극처럼 배우들이 말을 하고, 연극에서는 춤처럼 배우들의 몸짓 표현을 강조하게 되었다. 연출가들은 극장의 무대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극장이 아닌 길거리나 들판 혹은 공장과 같은 일상 공간을 무대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이를 위해서 연출가들은 문자로 쓰인 대본에 의존하기보다는 배우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즉흥적인 연출을 시도하였다. 나아가 자신들의 공연을 영화로 옮기기도 하였다.
‘춤연극’으로 잘 알려진 피나 바우쉬의 영화 ㉠<황후의 탄식>에는 각 장면들이 연극 무대처럼 펼쳐진다. 이 작품은 일정한 줄거리가 없는 대신, 상이한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장면들로 구성된 몽타주*와 같다. 연출가는 배우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하여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그들이 도시와 숲 속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다. 도시와 자연 배경은 주위와의 연관 관계로부터 떨어져 나와 원래의 지리적 공간이 아닌 낯설고 새로운 추상적인 공간이 된다. 그 공간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낮과 밤의 구별이 없는 도시의 거리, 마른 나뭇가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숲 속의 빈터, 너른 풀밭, 어두운 숲 등은 그 빛과 어둠으로 우리 존재의 슬픈 내면을 비춘다. 밝음 속에서 소외되는 것과 어둠 속에 갇히는 것은 본원적으로 같다. 이렇게 상징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연출가는 작품을 고정되고 완성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생성되는 ‘과정 속의 작품’으로 만들게 된다.
위와 같이 현대 공연 예술의 연출가들은 극적 사건이라는 허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배우의 몸이 겪는 고통과 상처의 느낌을 관객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전달하려고 한다. 이것을 위해서 연출가들은 오브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일상 생활에서 고정된 기능을 가진 가구․가방․책․옷 등이 무대 위에서는 전혀 다른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어 공연에 시적(詩的)인 특질을 부여하게 된다. 이런 것은 지금까지 오브제를 무대 장치에 필요한 소품(小品) 정도로 여겨 온 것과 크게 다르다. 상대적으로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들은 이제 마네킹처럼 오브제로 변형되어 존재한다. 기존의 공연 예술의 관습이었던 인간과 사물 사이의 위계질서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오브제를 사용하고, 장면들을 자유롭게 ㉡뒤얽어 놓음으로써 공연은 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제의적(祭儀的), 시적인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해서 현대 공연 예술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표현 주체의 행위와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언어이자, 기승전결이라는 우회로를 거치지 않은 현존의 언어가 된다. ㉢이미지의 표면이 이야기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몽타주:둘 이상의 장면을 하나로 편집하는 영화나 사진 등의 기법.
**오브제:예술 작품에서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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