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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이 차에 탄 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목적지에 내리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가 복잡한 도심에서 주차할 곳을 우연히, 그리고 매우 쉽게 찾는 장면에 대해서도 ⓐ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실상 어느 관객도 그와 함께 차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야기의 비본질적인 부분을 ⓑ배제하는 영화상의 생략을 기꺼이 수용한다. 극적인 전개를 위해 극단적인 사건을 설정하거나 연인이 이별하는 장면에서 작중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애절한 음악을 삽입하는 것, 카메라의 움직임이 유발하는 현장감과 정서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흔히 영화를 사실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영화의 재현 방식에 반응해서 영화 속 내용을 현실처럼 보는 데에 동의함을 뜻한다. 영화 속 내용은 실제 현실과 같지 않다. 우리는 영화가 현실의 복잡성을 똑같이 ⓒ 모방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영화 역시 굳이 그러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이렇게 관객과 감독 사이에 맺어진 암묵적 합의를 ‘영화적 관습’이라고 한다. 영화적 관습은 영화사 초기부터 확립돼 온 산물로, 관객과 감독의 소통을 돕 는다. 반복적인 영화 관람 행위를 통해 관객은 영화적 관습을 익히고, 감독은 그것을 활용하여 관객에게 친숙함을 제공한다.
확립된 관습을 무시하거나 그것에 도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 프랑스의 누벨바그 감독들은 고전적인 영화 관습을 파괴하며 영화의 현대성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불필요한 사건을 개입시켜 극의 전개를 느슨하게 만들거나, 단서나 예고 없이 시간적 순서를 뒤섞어 사건의 인과 관계를 ⓓ 교란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기만족적이고 독창적인 미학적 성취를 위해 영화의 고전적인 관습을 파괴하였다.
상업 영화에서도 부분적인 관습 비틀기가 ⓔ수시로 일어난다. 이는 흥행을 목적으로 오락적 쾌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 이라는 점에서 누벨바그의 관습 파괴와는 차이가 있다. 가령, ㉡ 근래 액션 영화의 감독들은 악당의 죽음으로 갈등이 해소 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악당을 다시 살려 내어 갈등을 또 한 번 증폭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처음 이러한 관습 비틀기를 접한 관객들은 당혹스러웠겠지만, 일단 여기에 익숙해지면 느긋하게 ‘악당의 귀환’을 기대하게 된다.
파괴된 관습이 반복되다 보면 그것이 또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를 잡는다. 따라서 영화적 관습은 고정된 규범일 수 없으며,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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