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여 손해를 야기하는 것을 불법행위라고 하는데, 불법행위법은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배분함으로써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법원이 어떠한 책임원칙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가 다르게 배분되며 불법행위 억제 효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법경제학에서는 법원이 적용 가능한 책임원칙들을 분석하여 효율적으로 불법행위를 억제할 수 있는 책임원칙을 찾고자 한다.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원칙을 분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개념이 ‘주의 수준’과 ‘주의 기준’이다. 주의 수준이란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불법행위 억제를 위해 기울이는 주의의 정도를 의미한다. 주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주의를 기울이는 데 드는 시간이나 노력 등과 같은 주의 비용은 커지지만, 불법행위 발생 확률이 줄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줄어든다. 주의 기준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배분하기 위해 법원이 정한 주의 수준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불법행위 억제를 위한 주의 비용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합이 최소화되는 지점이 사회적 효율성이 달성되는 최적의 주의 수준이다. 그리고 이것이 불법 행위를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주의 수준이므로 법원은 이를 주의 기준으로 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원칙의 효율성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불법행위에 대해 피해자의 책임 여부는 고려하지 않고 가해자의 책임 여부만을 고려하는 책임원칙들을 살펴보자. 비책임원칙은 불법행위는 발생했으나 피해자의 손해에 대해서 가해자가 어떠한 배상 책임도 지지 않는 원칙이다. 반면 엄격책임원칙은 손해에 대해서 가해자가 모든 배상 책임을 지는 원칙이다. 이 두 원칙은 가해자에게 손해 배상의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가해자의 주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와 달리 과실원칙은 가해자의 과실 여부에 따라 가해자의 배상 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원칙이다. 이때 과실이란 법원이 부여한 주의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과실원칙에서는 가해자에게만 주의 기준이 부여되므로 가해자에게 과실이 있으면 가해자가 전적으로 배상 책임을 지고, 과실이 없으면 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법원이 불법행위에 대해 비책임원칙을 적용하면 가해자에게 책임이 없어 피해자가 모든 손해를 부담하게 되므로, 비책임원칙하에서 가해자의 주의 수준은 매우 낮아진다. 그러므로 이 원칙은 불법행위 억제에 효율적이라 할 수 없다. 반면 엄격책임원칙을 적용하면 가해자가 항상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하므로 가해자의 주의 수준은 매우 낮아진다. 그러므로 이 원칙은 불법행위 억제에 효율적이라 할 수 없다. 반면 엄격책임원칙을 적용하면 가해자가 항상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하므로 가해자의 주의 수준은 높아진다. 이때 가해자의 주의 수준은 불법행위 억제를 위한 주의 비용과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의 합이 최소화되는 지점, 즉 사회적 효율성이 달성되는 최적의 주의 수준으로 유도된다. 그리고 법원이 과실원칙을 적용하면 가해자는 손해 배상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원이 정해 놓은 주의 기준을 지키려 한다. 결국 엄격책임원칙과 과실원칙은 모두, 불법행위를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책임원칙이 된다.

 

한편 불법행위에 대해 가해자의 책임 여부만을 고려하는 책임원칙과 결합하여 피해자의 책임 여부까지 고려하는 책임원칙들이 있다. 먼저 기여과실은 법원이 피해자에게 주의 기준을 부여하고 피해자가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을 피해자의 과실로 정의하여, 피해자의 과실을 가해자가 손해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는 항변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과실원칙에 기여과실이 결합된 경우, 우선 과실원칙이 적용되므로 가해자에게 과실이 있으면 가해자가 손해를 전적으로 배상해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의 항변이 인정되면, 즉 피해자의 과실이 입증되면 가해자에게 과실이 있더라도 가해자는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고 피해자가 손해를 전적으로 부담하게 된다. 결국 가해자에게만 최적의 주의 수준이 유도되는 과실원칙에 기여과실이 결합되면 피해자에게도 최적의 주의 수준이 유도된다는 점에서 기여과실은 불법행위를 효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책임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비교과실은 기본적으로 과실원칙을 적용하되, 피해자에게도 주의 기분을 부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가해자에게 과실이 없으면 배상 책임이 없고, 가해자에게 과실이 있고 피해자에게 과실이 없으면 가해자에게는 배상 책임이 있다.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과실의 크기에 비례하여 손해에 대한 책임을 분담한다. 이 원칙하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각각의 주의 기준을 지키고자 한다. 비교과실은, 양측에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실이 큰 쪽이 더 많은 손해를 부담해야 하므로 양측을 조금이라도 더 높은 주의 수준으로 이끌 수 있다. 그래서 비교과실은 불법행위를 효율적으로 억제하는 책임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기여과실 원칙하에서 피해자의 과실이 가해자의 과실보다 작아도 가해자가 항변을 통해 배상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과 구별된다.

 

 

― (출전) 오정일 외,「법경제학입문」
@ 2019학년도 4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21~2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