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윤리적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의 실천은 동기에서 비롯한다. 이 지점에서 윤리학의 핵심 과제 두 가지가 도출된다. 하나는 도덕 원칙이나 규칙 혹은 윤리적 행위의 가치를 입증하는 정당화 과제이며, 다른 하나는 이러한 가치를 실천하도록 행위를 유인하는 동기화 과제이다. 정당화 과제는 무엇이 정당하며, 왜 정당한가를 따지는 일이며, 동기화 과제는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인도하고 유인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일이다. 이 둘은 윤리학의 쌍두마차인데, 시대에 따라 윤리학이 주력한 과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였다. 


근대 이전의 윤리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정당화의 기반을 특정한 형이상학에 두고 있다. 또한 이 시대의 윤리학은 특정한 공동체를 현실적 기반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그 공동체의 역사와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특정한 정치적, 법적인 관행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학은 이 같은 전통과 관행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의거한 규범과 윤리를 전제로 한 동기화에 주력하였다.


윤리학이 정당화 과제보다 동기화 과제에 전념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윤리 체계는 관행이나 관습에 안주하면서 교조적인 모습을 띠게 되고, 현상 유지를 위한 보수화, 권위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일반적으로 질서정연한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경우에는 정당화에 대한 요구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안정된 공동체가 해체되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을 때에는 그 질서를 유지할 새로운 규범 체계에 대한 정당화 과제가 전면으로 부상하게 된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개인들을 서로 묶어 주고 그들 간의 갈등을 완화해 주던 유대가 점차 약화되고, 상업적인 인간관계가 점차 늘어났다. 그에 따라 ㉠개인주의가 우세해짐으로써 정당화 요구가 급증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근대 이후의 윤리학이 의무, 옳음, 책무 등에 대한 정당화 과제에 골몰해 온 결과, 윤리적 삶에서 행위의 동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되었다. 


어떠한 도덕적 행위도 정당화 측면과 동기화 측면을 갖는 만큼 윤리학은 모든 도덕적 영역에서 정당화와 동기화 과제를 균형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이때 모든 덕행은 언제나 정당화의 관점에서 반성되고 성찰할 필요가 있으며, 모든 의무는 현실성 있는 동기화의 관점에서 추구되어야 한다.


― 황경식, ‘도덕 행위의 동기화와 수양론의 문제’